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온 5세 (문단 편집) == 사후 == 레온의 시신은 시민들에게 공개되었고, 레온의 네 아들 [[콘스탄티노스(레온 5세의 아들)|콘스탄티노스]], 그리고리오스, 바실리오스, 테오도시오스는 과거 레온이 미하일 1세의 아들들에게 했듯이 [[거세]]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미하일 1세의 차남 [[이그나티오스]]가 나중에 세계 총대주교가 된 것과 비슷하게 레온의 아들 중에서는 [[시라쿠사]]의 대주교가 배출된다. (그리고리오스, 844 ~ 853년과 858 ~ 867년, 877 ~ 878년[* 아랍 왕조인 [[아글라브 왕조]]에게 시라쿠사가 함락된 연도]) 그리고 이그나티오스가 867년에 그리고리오스를 해임하는 것도 재미있는 점. 여담으로 미하일 2세의 현손자이자 [[마케도니아 왕조]]의 [[콘스탄티노스 7세]]는 레온 5세를 가문의 선조로 삼았다. 더불어, 황후 [[테오도시아]]는 목숨을 유지했지만 머나먼 지방 수녀원으로 추방당해 거기서 살다가 826년경에 약 50세를 일기로 죽었다. 남편이 자기 말대로 하다가 암살당하고 아들들은 거세당하고 자신도 멀리 수도원에 갇혀 유배당해 살다가 죽었으니 미하일을 죽이려던 남편을 말리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물론 특별히 테오도시아가 잘못한 건 없다. 원래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사를 앞두면 사형수의 처형을 뒤로 미루는 일이 많았고, 그리고 어디까지나 미루었을 뿐, 사면이 아니기에 원래대로라면 사형당할 날짜가 조금 뒤로 미뤄질 뿐이지 별로 달라질 것은 없는데... 문제는 간수가 황제가 왔는데도 졸고 있었다는 것, 즉 테오도시아보다는 황제가 간수를 처벌하지 않은 것이나 간수가 졸은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분류:동로마 황제]][[분류:동로마 집정관]][[분류:775년 출생]][[분류:820년 사망]][[분류:9세기 집정관]][[분류:살해된 인물]][[분류:아르메니아계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